[카테고리:] 신앙

  • 우루과이 한 작은 성당벽에 적혀있는 글

    “하늘에 계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딸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 하지 마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 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고 하지 마라
    죽을 때까지 먹을 양식을 쌓아두려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하지 마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 하지 마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라 하지 마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이라고 하지 마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 수련회를 다녀와서

    2005년 8월 27일

    오전 8시
    내가 잠에서 깨어 일어났을 때, 침대 옆자리를 보니 아내가 보이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먼저 일어나서 수련회 갈 준비를 한다고 생각했다.
    언제 왔는지 잘 모르지만, 침대 가운데에는 샤론이가 이불을 차 던지고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아내에게 아침인사를 하고는 양치질하고 세수를 했다.
    아내는 이 방 저 방 다니면서 수련회장에 가져갈 옷가지와 세면도구 등을 챙겼다.

    나는 평소와 같이 허름한(?) 옷을 입고 가고자 하였으나, 아내는 얼마 전 세일할 때 산 옷을 입자고 하였다.
    커플 티로 산 옷을 드디어 입을 기회가 온 것이다.
    사실 내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아하는 옷 스타일은 아니었으나, 커플 티를 같이 입음으로 아내의 마음에 기쁨이 더한다면, 그 정도야 입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평소 옷을 골라 입는 패션감각이 (좋게 말해서) 남다른 나는, 웬만하면 아내가 입으라는 옷을 입는다.
    오늘도 나도 흔쾌히 동의하였다.
    어제까지의 날씨로 봐서는 그리 덥지 않으리라 생각되어 빨간색 긴 팔 스웨터를 입었다.
    강렬한 빨간빛의 옷은 훨훨 타오르는 우리의 사랑을 잘 표현해 주는 듯했다.

    나는 아침에 합창실 연습이 있으며, 샤론이는 매주 토요일 오전에 있는 한글학교 수업이 있어서 우리는 부지런히 준비 했다.
    언제 일어났는지 샤론이가 눈을 비비면서 왔다.
    샤론이도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예쁜 옷을 입으며 한글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우리는 아침 9시쯤 집을 수련회에 가져갈 짐들을 차에 싣고는 출발했다.
    집 근처에 있는 슈퍼 리들(Lidl)에서 수련회에서 사용할 과일과 과자, 그리고 음료수를 샀다.
    차 트렁크에 다 들어가지 않아 조수석에도 나눠서 실었다.
    아내는 나를 극장에 내려주고는 샤론이와 함께 한글학교로 갔다.

    이날 합창연습은 오전 11시 30분에 끝날 예정이었으므로, 나는 아내에게 11시 30경에 극장 앞에서 보자고 하였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이번 시즌에 합창 지휘자는 오전 11시에 연습을 마쳤다.
    30분쯤 시간이 남아서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나는 김상엽 집사님과 이번 시즌 새로 합창단에 들어온 조일훈씨와 함께 극장 매점에 가서 차 한잔 마셨다.
    잠시 후 김호일 집사님도 와서 함께 이런 저런 이야기 나누었다.

    11시 30분쯤 극장 밖에 나가서 김호일 집사님 차는 먼저 수련회장으로 출발했다.
    나는 원래 나비게이션이 있는 김호일 집사님 차를 따라 갈 예정이었으나, 김상엽 집사님이 가는 길을 안다고 해서 그 차를 따라 가기로 했다.
    아내는 일회용 컵 등을 사서 잠시 후에 샤론이를 데리고 왔다.




    김상엽 집사님의 차를 따라 쉽게 찾아간 수련회장(Westensee Jugendherberge – 베스텐제 유스호스텔)는 몇 년 전에 다녀간 곳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신선해 보였으며, 참 아늑했다.
    멋진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유스호스텔이기에 운치도 있고, 여름 시즌이 지나가는 시점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도 많이 없고 한산해서 더 좋았다.

    김현배 담임목사님께서는 조금 늦게 도착하신다고 해서 낮 12시 반쯤 도착한 사람들이 먼저 점심식사를 시작했다.
    점심식사 후 몇 명의 남자들은 밖에 나가서 원반던지기를 하였다.
    우리들은 약하게 부는 바람결을 타고 창공을 나르는 원반을 바라보며, 날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불태웠다.
    또한 우리들은 원반던지기도 참 좋은 운동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오후 2시에 영적 부흥 집회 첫번째 시간을 가졌다.
    ‘은혜의 힘으로 살자!’라는 제목으로 목사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은혜를 받으면 말씀, 경건, 믿음, 기도, 그리고 사랑으로 변화된다고 말씀해 주셨다.
    참으로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내 개인적으로 이 시간의 말씀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두가지 있다.
    첫번째는 남자와 여자, 이렇게 두 명이 합쳐서 100 이 되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남자가 10, 여자가 90인 경우도 있다. 그러한 경우는 바보온달과 평강공주라는 말씀이다.
    두번째는 결혼한 부부는 절대로 이혼하면 안 된다. 그러므로 서로 같이 살기 싫으면 배우자가 빨리 죽으라고 정성껏(?)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이다.

    그 다음으로 우리는 모두 밖에 있는 모래사장에서 배구를 하였다.
    남자들과 여자들 모두 섞어서 한마음으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의 경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오민수 강도사님의 활약(?)이었으리라.
    아마도 오민수 강도사님께서는 자신이 속해 있는 팀보다도 상대방 팀을 더욱 더 사랑해 주신 듯 하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또한 심진산 목사님의 성령의 배구공도 빼 놓을 수 없다.
    심목사님이 서브를 넣으시면 선수들은 그 공을 자꾸 피하는 듯한 인상마저 주었으니,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거위고기냐 칠면조고기냐는 논란 중에 조류라는 결론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한국과 독일 친선 축구 대회가 있었다.
    오민수 강도사님의 양팀을 번갈아 가면서 종횡무진하신 활약상과, 심진산 목사님의 구둣발 축구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아. 그리고 김호일 집사님의 고함 축구도 입가에 웃음을 머금게 한다.

    그 후에 가진 영적 부흥 집회 두번째 시간에서는 ‘복된 장마비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없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후에 이어진 교제의 시간에서는 여러 부부들의 연애시절 이야기 등등 재미있고 솔깃한 이야기와, 일부 남자 교우들의 식당에서 창문을 통해 월장해 나가서 만끽한 여름밤의 낭만으로 밤 늦게까지 이야기 꽃을 피웠다.

    2005년 8월 28일

    아침 7시, 영적 부흥 집회 세번째 시간에는 ‘만나의 은혜’라는 제목으로 목사님께서 말씀해 주셨다.
    이 말씀을 듣는 가운데 내 머리 속에는 성가곡 ‘생명의 양식’이 계속 맴돌았다.

    아침식사시간에 맛본 맛있는 빵과 햄, 소시지, 그리고 잼과 누텔라의 맛은 아직도 내 입맛을 다시게 한다.

    아침 10시에 드린 주일 예배에서는 ‘풍성한 은혜’라는 제목으로 이번 수련회 총결산을 할 수 있었다.

    점심식사 후 다시 한번 모래사장 배구를 하였다.
    이날 배구에서는 초대선수로 오신 김상엽 집사님의 아버님의 활약상이 두드러졌었다.
    또한 일부 언론(?)에서는 정선씨가 창학씨보나 배구를 더 잘한다라고 하였으나, 그래도 창학씨의 배구공을 항상 진지한 자세는 그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에게 많은 웃음을 선물해 준  이번 수련회장에서 모두들 아쉬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번에 모였던 28명(그냥 혼자 대강 헤아려본 숫자임, 공식숫자 아님)과 함께 하지 못한 다른 교인들과 함께 더 은혜로울 다음 수련회가 벌써 기다려진다.

  • 교회 수련회에 갑니다

    2005년 8월 27일

    오늘 낮부터 내일 낮까지로 예정된 ‘여름 킬교회 온가족 수련회’에 참가합니다.

    Westensee 에 있는 Jugenderberge 에서 1박 2일동안 ‘은혜의 힘으로 살자!’라는 주제로 진행되지요.

    저는 아침 10시부터 11시 반까지 극장에가서 합창 연습을 한 후, 그동안 한글학교에서 열심히 한글을 배운 샤론이와 샤론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린 샤론엄마와 함께, 호일이 차를 따라 갑니다.

    제 차에는 나비게이션이 없는 관계로 그냥 호일을 따라서 가기로 한 거지요. ^^

    아무쪼록 멋진 수련회가 되길 바랍니다.

  • 모래 위의 발자국 (Korean version)

    모래 위의 발자국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그는 예수님과 함께 해변을 다라서 걷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하늘을 가로 질러 그의 삶의 장면들이 펼쳐졌습니다.

    모래 위에는 두 사람의 발자국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발자국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마지막 장면이 그의 앞에 펼쳐졌을 때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자신의 발자국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는 또한 그의 삶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펐던 일들이 일어났었음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그를 괴롭게 했고 그래서 그는 주님께 여쭈어 보았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면 항상 저와 함께 하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제 삶의 가장 어려웠던 순간들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없음은 어찌된 일입니까?

    왜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할 때 주님께서는 저를 떠나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소중한 정말 소중한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나는 너를 결코 떠난 적이 없었단다.

    네가 고통과 환난 가운데 있을 때에 모래 위에서 한 사람의 발자국을 본 것은

    그 때는 내가 너를 업고 지나갔기 때문이란다.

  • Spuren im Sand (German version)

    Spuren im Sand

    Eines Nachts hatte ich einen Traum:

    Ich ging am Meer entlang mit meinem Herrn.

    Vor dem dunklen Nachthimmel erstrahlten, Streiflichtern gleich, Bilder aus meinem Leben.

    Und jedesmal sah ich zwei Fußspuren im Sand, meine eigene und die meines Herrn.

    Als das letzte Bild an meinen Augen vorübergezogen war, blickte ich zurück.

    Ich erschrak, als ich entdeckte, daß an vielen Stellen meines Lebensweges nur eine Spur

    zu sehen war.

    Und das waren gerade die schwersten Zeiten meines Lebens.

    Besorgt fragte ich den Herrn:

    “Herr, als ich anfing, dir nachzufolgen, da hast du mir versprochen, auf allen Wegen bei mir zu sein.

    Aber jetzt entdecke ich, daß in den schwersten Zeiten meines Lebens nur eine Spur im Sand zu sehen ist.

    Warum hast du mich allein gelassen, als ich dich am meisten brauchte?”

    Da antwortete er:

    “Mein liebes Kind, ich liebe dich und werde dich nie allein lassen, erst recht nicht in Nöten und Schwierigkeiten.

    Dort wo du nur eine Spur gesehen hast, da habe ich dich getragen.”